詩다움

배트맨 [권혁웅]

초록여신 2009. 5. 7. 00:36

 

 

 

 

 

 

 

 

 

 그는 어둠의 지배자였다 동굴처럼 패어나간 골목 저쪽 끝에서 이쪽 끝까지,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점프컷으로 날아오던 남자가 있었다 한성여고 뒤편은 달의 뒷면과 같아서 꼬불꼬불한 내부를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달빛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골목 저쪽에서 전전반측, 그가 날아왔다 불운(不運)한 이들이 길을 잃을 때마다 그는 검은 날개를 펼쳐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곤 했다 불우(不遇)한 이들이 비명을 듣고 뛰쳐나와도 한번도 그를 본 적은 없었다는 후문이다 그는 어둠의 지배자였다 여자들이 가슴에 품은 두 개의 달, 그 빛 아래서만 그는 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 마징가 계보학,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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