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패랭이꽃 [이승희]

초록여신 2009. 4. 30. 23:39

 

 

 

 

 

 

 

 

 

 착한 사람들은 저렇게 꽃잎마다 살림을 차리고 살지, 호미를 걸어두고, 마당 한켠에 흙 묻은 삽자루 세워두고, 새끼를 꼬듯 여문 자식들 낳아 산에 주고, 들에 주고, 한 하늘을 이루어간다지.

 저이들을 봐, 꽃잎들의 몸을 열고 닫는 싸리문 사이로 샘물 같은 웃음과 길 끝으로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 보이잖아, 해 지는 저녁, 방마다 알전구 달아놓고, 복(福)자 새겨진 밥그릇을 앞에 둔 가장의 모습, 얼마나 늠름하신지. 패랭이 잎잎마다 다 보인다, 다 보여.

 

 

 

 

*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창비시선 300번 기념시선집) / 박형준 이장욱 엮음, 창비, 2009.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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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시는 사람을 되찾아야 합니다

 

 창비시선 300번 기념시선집을 엮으면서 엮은이들은 참 행복하고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열정적이고 따스한 시의 숨결을 따라가다가 문득 벅차오르기도 했습니다. 시인들의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최대한 섬세하게 읽어내려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선집에서, 2천년대의 시적 지향 속에서 우리 시대의 사람의 모습과 삶을 통해 인간이 교환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이 태어날 수 있는 지점을 보고자 했습니다.

 이 시집의 주제를 '사람'으로 선택한 것은 시가 대화여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난 이래로 타인과 교류하면서 생성된 또다른 자아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동체를 이루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고요한 주체를 만들어나갑니다. 하나의 개성이 아니라 다양한 개성 속에서 우리가 만지고 보는 사물과 만나는 인간들이 각기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 그렇게 생성된 리듬이 시적 대화의 출발입니다.

 우리 시대의 시는 사람을 되찾아야 합니다. 오늘날 시에 대한 감응은 인쇄된 책에서 시를 읽고 이해하려는 수준에서 멈추고 맙니다. 언제부턴가 시는 독자와의 연결을 잃어가고 독자에게 가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되기보다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어야 합니다. 시인이 시인을 위해 시를 쓰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고, 사람들을 위해 진흙탕 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합니다.

ㅡ '엮은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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