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입구에 썩은 몸뚱이를 깨끗이 들어내버린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사내 하나 너끈히 품을 수 있을 품속으로 철없는 조무래기들 들락거리며 놉니다.
느티나무 주변에는 저 찬기파랑가의 "아으, 잣가지 노파 서리 몯누올 화반"처럼 직립한 잣나무 몇그루 분기탱천해 있습니다. 하긴 이 절간이 통일신라 화랑들의 세속 오계 발원지라나요.
절간 마당에는 일년에 막걸리 열두 말을 마신다는 늙은 반송 한 그루도 처진 어깨로 주저앉아 있습니다. 여름날이면 그 넉넉한 어깨 사이로 아리따운 비구 스님들이 다투어 모여든다는 말에 담장 너머 요망한 복사꽃들 까르르 자지러집니다.
"사랑을 짓지 말라"는 운문사에 봄이 왔습니다. 시치미 뚝 때며 봄, 봄이 왔습니다.
* 살구꽃이 돌아왔다, 창비(2009. 3)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곡선의 말들 [김선태] (0) | 2009.03.27 |
---|---|
산벚꽃 [김선태] (0) | 2009.03.27 |
벚꽃나무 아래 잠들다 [김선태] (0) | 2009.03.27 |
매미 [도종환] (0) | 2009.03.27 |
4월에 내리는 눈 [안도현] (0) | 2009.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