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무들의 구도(構圖), 구도(求道) ........ 김선태

초록여신 2009. 3. 27. 09:18

 

 

 

 

 

 

 

 

 

 

 운문사 입구에 썩은 몸뚱이를 깨끗이 들어내버린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사내 하나 너끈히 품을 수 있을 품속으로 철없는 조무래기들 들락거리며 놉니다.

 

 

 느티나무 주변에는 저 찬기파랑가의 "아으, 잣가지 노파 서리 몯누올 화반"처럼 직립한 잣나무 몇그루 분기탱천해 있습니다. 하긴 이 절간이 통일신라 화랑들의 세속 오계 발원지라나요.

 

 

 절간 마당에는 일년에 막걸리 열두 말을 마신다는 늙은 반송 한 그루도 처진 어깨로 주저앉아 있습니다. 여름날이면 그 넉넉한 어깨 사이로 아리따운 비구 스님들이 다투어 모여든다는 말에 담장 너머 요망한 복사꽃들 까르르 자지러집니다.

 

 

 "사랑을 짓지 말라"는 운문사에 봄이 왔습니다. 시치미 뚝 때며 봄, 봄이 왔습니다.

 

 

 

 

* 살구꽃이 돌아왔다, 창비(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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