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의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 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으로 친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의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꼼짝없이 도둑놈이 되었구나...... 눈을 감았다
3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는 것이었다
4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 수, 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 시, 사랑에 빠지다
2009.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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