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시인 70인

사과를 내밀다 [맹문재]

초록여신 2009. 3. 25. 10:56

 

 

 

 

 

 

 

 

 

 

 

1

마을의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 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으로 친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의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꼼짝없이 도둑놈이 되었구나...... 눈을 감았다

 

 

3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는 것이었다

 

 

4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 수, 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 시, 사랑에 빠지다

 

 

   2009. 02. 23.

 

 

 

'한국대표시인 70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수께끼 [허수경]  (0) 2009.03.27
태양계 [이문재]  (0) 2009.03.25
둥근 반지 속으로 [이사라]  (0) 2009.03.25
어느 사이 속보速步가 되어 [이성부]  (0) 2009.03.18
사랑의 별빛 [허만하]  (0) 2009.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