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전망 좋은 집 [손진은]

초록여신 2009. 3. 25. 10:36

 

 

 

 

 

 

 

 

 

 

라디오를 듣고서야 알아내었지 전망 좋은 집

집 앞에는 초록 숲 한쪽 옆엔 테니스강

조약돌 같은 살색 가진 사람들 뙤약 속에 땀 흘리는 곳

그곳 내려다보이는 내 아파트에 오면 친구들

전망 좋은 집이라고 하나같이 말했지

그래 전망 좋은 집

초록 공간의 멋진 작은 집들

그 집 앞에는 막 벙글기 시작한 호박꽃 사이로

벌떼들이 잉잉거리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

신선처럼 가끔씩 초록 숲에 나와서

밭일하는 게 흐릿하게 보이지

전망 좋은 집

그러나 바보같이 라디올 듣고서야 나는 알아내었지

그곳이 그린벨트라는 사실

더욱 초록 공간에 사는 사람들 우리와는 정말 다른

한발 디딜 때마다 얼쑤 정겹게 파리 떼가 달라붙고

공동 배수장에 고인 물을 퍼마시는 신선이라는 사실

쫄랑쫄랑 숲길 지나 소풍 가는 어린 친구들

세계에서 제일 긴 강은 어디? 우리나라의 수도는?

인구는? 물으면 잘도 대답하는 친구들

바로 앞의 초록 숲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어른들조차 모르거나 가르쳐 주려고도 않는다는 사실

한 달 수입이 몇만 원도 못 되는 사람 90%가 넘는다는

초록 공간의 전망 좋은 집

의 마을

 

 

 

 

*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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