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열어보려고
허공을 글어대는 손톱들
저 무수한 손가락들을 모른 척
오늘만은
온 세상의 햇빛을 수련네로
몰아주려는 듯
휘청, 물 한 채가 흔들렸다
헛것을 본 것처럼 놀라
금방 핀 제 꽃송이를 툭 건드리는데
받은 정을 갚으려고 빛으로 붐비는
다이내나 妃와 오드리 햅번까지
활짝 눈을 떴다
팔뚝만 한 쇳덩이가 바늘이
될 때까지 불덩이에 얹혀살다가
불의 그림자로 바느질한 빛의 사서함
그녀들의 사서함이 代 끊긴 수련들을
붉고 노란 웃음소리로 불러냈을까
깊은 울음만이 진창으로 흘러들어가
붉고 노랗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는 사이에
수련이 또 수없이 피어났다
잘 익은 근심들을
붉고 노란 웃음소리로
뽑아내듯
* 빛의 사서함 / 문학과지성사, 2009. 2. 27.
시련 없이 성숙할 수 있는 사람은 없듯이, 죽음의 고통 없는 생명의 탄생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죽음이 삶 속에 있다는 깨달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죽음의 시련을 극복해서 새로운 삶의 의지로 사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라연은 삶에서 죽음을 찾기보다 죽음에서 생명을 발견하는 일을 더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시인이다.
『빛의 사서함』이란 제목이 암시하듯이, 삶에 어떤 고통과 시련이 오더라도 그것에 절망하기보다 빛의 희망을 찾는 일은 그녀의 모든 시를 특징짓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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