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김민정]

초록여신 2009. 2. 20. 22:44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ㅡ시시비비(詩詩非非) 18

 

 

 

 

 

 

 

 

천안역이었다

 

 

홀로 연착된 막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톡톡 이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플랫폼 위에서 한 노숙자가 발톱을 깎고 있었다

 

 

헤진 군용점퍼를 입은 그의 아랫도리는 팬티바람이었다

 

 

가랑이 새로 굽슬굽슬 빠져나온 털이 참 더럽게도 까맸다

 

 

아가씨, 나 삼백 원만 너무 추워서 그래

 

 

육백 원짜리 네스카페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이거 말고 자판기커피 말이야 거 달달한 거

 

 

삼백 원짜리 밀크커피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서울행 열차가 십분 더 연착될 예정이라는 문구가

 

 

전광판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천안두리인력파출소

 

 

안내시스템 여성부 대표전화 041-566-1989...

 

 

순간 다급해지는 어떤 손이 있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따뜻한 커피 캔이 게서 만져졌다

 

 

여성부를 이성부로 읽던 밤이었다

 

 

 

 

* 시에, 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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