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시인 70인

연애편지를 쓰자 [김행숙]

초록여신 2009. 2. 17. 12:15

 

 

 

 

 

 

 

 

 

 

어둠을 동그랗게 오려낸

스탠드 불빛 아래서

꿈결처럼

너도 언젠가 그런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옛날 연애편지를 쓰자

 

 

이 연애편지에서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밤바다의 등대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매우 어려운 것을

꿈꾸는 눈동자나

노래하는 심장과 함께

그때 우리는 열렬해

외롭기도 해

그랬지, 나는 오래전에 너의 창문을 두드리고 두드리다

갔지

 

 

세게 두드렸으면 유리창쯤 깨졌을 텐데......

피도 봤겠지

너도 봤겠지

오버over하는 건 연애의 본질일까, 실수일까

 

 

지우개는 아직 하얗고

밤중에 밀려나오는 지우개 가루는 검다

모래로 쓴 글씨처럼

애써 지울 필요도 없어!

우리는

내일 또 지워진 후에 아주 옛날식 연애편지를 쓰자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 수, 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 시, 사랑에 빠지다

 

 

   2009.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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