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허밍, 허밍 [고영민]

초록여신 2009. 1. 18. 22:43

 

 

 

 

 

 

 

 

 

해질녘 저 밭은 무엇인가

해질녘 저 흐릿한 논길은

해질녘 밭둑을 돌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거미 같은 저 애들은 무엇인가

 

 

긴 수숫대

매양 슬픈 뜸부기 울음

 

 

해질녘 통통통 경운기 짐칸에 실려가는

저 텅 빈 아낙들은 무엇인가

헛기침을 하며 걸어오는 저 굽은 불빛은 무엇인가

 

 

해질녘 주섬주섬 젖은 수저를 놓는

수레국화 옆에서 흙 묻은 발목을 문지르는 저 고단함은

해질녘 내 이름 석자를 적어온

이 느닷없는 통곡은 무엇인가

 

 

해질녘, 해질녘엔

세상 어떤 것도 대답이 없고

죽은 사람은 모두 나의 남편이고 아내이고

해질녘엔 그저 멀리 들려오는

웃는 소리, 우는 소리

 

 

허밍, 허밍

 

 

 

 

* 공손한 손, 창비.

 

 

 

 .......

해질녘,

눈물 짓던 날들의 연속이던 시절이 있었지요.

허밍, 허밍

눈물샘을 짜내던

그때를 생각하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 경계가 모호한

금을 만들어내곤 했었지요.

여전히

지어지지 않는

그 금 안에서 오늘도

여전한 나를 봅니다.

 

 

(허밍, 허밍 속의...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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