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화분 네 개를 삽니다
당신이 산 열한 개의 국화 화분에는
일곱 개 못 미치는 셈입니다
일곱 개를 다 맞추지 못하는 마음에
비린 햇발이 내려앉습니다
열한 개의 화분에 일일이 꼬리표를 달아
누가 가장 오래 살아남을지 내기하자며
하얀 이 드러내 보이던 당신
열한 개의 국화 화분을 들여놓은 방에서
옷을 다 벗고 죽었다고
멀리 있던 내게 소식 왔을 때는
삼 년 지나 마음 어둑해져 아무도 만나지 않는 때였습니다
그런 줄 모르고 왜 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왜 가을이면 지천으로 국화만 보내느냐고 물었습니다
버리려고 내놓았던 빈 화분 안으로 머리를 넣습니다
옛것이 생각나 쏟아지겠습니다
행여 짤막한 몇 줄까지 죄다 쏟아놓더라도
인연의 나중은 무겁습니다
*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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