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사생활 [이장욱]

초록여신 2008. 9. 16. 18:52

 

 

 

 

 

 

 

 

 

 

너는 사적인 표정으로

약간의 손짓을 섞어 내게 얘기하는 중,

너와 나를 투명하게 비추는 카페 프란츠

대형 통유리 너머로

사생활의 역사가 흘러간다

장엄하다

어떤 사생활이든 활보가 가능한 거리인 것이다

비둘기는 장엄한 자세로

지금 막 생애 최고의 활강을 마치고 안착한다

이 도시에서 지금 그것을 목격한 자는 나뿐

나는 그 활강의 자세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고요한 비둘기를 향해 아이는

아주 사적인 돌을 던지고

비둘기의 사생활을 가볍게 무너지고

나는 드디어 너를 바라본다

나와 나는 동지다

내일 아침에도 아파트에는

재활용 수거를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지겠지

동지들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우리는 장엄한 세계를 건너가리

그리고 또 장엄한 오후가 오면

추리닝에 쓰레빠를 끌고 당당하게

창림김밥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는 거야

생애 최고의 활강을 위해 다시 이륙하던 비둘기가

김밥집 창밖에서 나를 힐끗

바라보는 순간

 

 

 

 

 

 

*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지성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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