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흔적 [강연호]

초록여신 2008. 9. 8. 23:51

 

 

 

 

 

 

 

 

 

 

 

새가 날아가자 나뭇가지 부러졌네

바람 한 점 없었는데

한참 뒤에 문득 생각난 듯이 부러졌네

모든 게 흔적이네

무수한 나무들 중에 그 나무를

무수한 나뭇가지들 중에 그 가지를

선택하고 선택받은 운명의 흔적이네

 

 

새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

새는 날아가도 흔적은 남네

그 여운 고스란히 견뎌내려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용쓰다가, 용쓰......다가

나뭇가지 기어이 부러졌네

흔적의 무게 견디지 못했네

 

 

흔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네

날이 갈수록 흔적은 무게를 더하네

아무도 흔적을 지탱하진 못하네

이 정도 흔적의 무게쯤

너끈히 견딜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시절

내게도 있었네, 아니 정말 있었냐?

잘 모르겠네 기억나지 않네

그것 역시 흔적이네

 

 

 

 

.......

유쾌했던 배우 안재환씨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했네.

자살이라네.

신혼의 꿈도 꺾이었네.

장기기증 의사도 밝히셨다는데,

그것도 벌써 10~ 15일을 경과했다하네.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저 슬프기만 하네.

가슴이 쿵쾅쿵쾅 방망이질 치네.

무엇이 그토록 그를 벼랑으로 내몰게 했었던가?

무엇이 그토록 젊은 한 배우를 다시 주검으로 이끌었단 말인가?

내 나이와 같은 36세.

거액의 경제고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보도들 앞에서

경악하고 침묵할 수 밖에 없다네.

다시 이빨을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 살 수도 있었건만,

본인만이 알 수 있겠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만이 무성한 입들을 놀려대네.

안타깝고 안타깝고 애통하다네.

아마도 절실함이였겠지.

마지막 그 선택의 순간에 따뜻하게 손 잡아 주는 사람 진정 없었을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는 이 없었던가?

아옹다옹하던 삶의 도화지 위에서 잠시 침묵한다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독하디 독한 마음으로 그 죽음의 시간을 건너갔을까?

탈렌트라는 유명인이기에 더 아린 가슴앓이가 있었으리라.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무한 사랑을 보였다는데...

그런 유서를 남겼었다는데...

한 번 다시 돌아볼 수는 없었을까?

환한 웃음, 그 유쾌함을 다시는 볼 수 없다네.

만원으로도 행복했다던 그 젊은 청춘은 숱한 상처와 흔적을 남기며 우리 곁을 떠나갔다네.

돈, 돈, 돈이 없어서 가능한 세상에서

부디 편안하게 더 좋은 세상에서

더 환하고 유쾌한 웃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또 빕니다.

슬픔에 쌓여 실신해 있다는 정선희씨를 비롯한 부모님 그리고 모든 가족들에게도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부디 더 큰 상심을 떠안으시지 않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충격, 삶의 무상. 흔적 앞에 침묵하며,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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