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나 걸려 우리는 낯선 나라에 기착했다 까까머리로 떠났는데 그곳에 도착하자 수염이 희끗희끗해졌다 그들은 손 흔들어 환영했지만 우리를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여기는 듯했다 축제소식을 듣고 온 우리는 행사장의 상징성 때문에 참석하기 곤란하다며 옥신각신했다 인민들이 땡볕에서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어 안내원들은 차를 대놓고 재촉했다 거기 가면 큰일 나 감독관이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술을 마셨다
우주선은 낯선 곳에 우리를 부려놓고 어느 별로 간 것일까 우리는 호텔 안에 갇혀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 무성영화처럼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인민들은 잿더미 위에 거대한 조형물의 도시를 세웠다 화면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 아파트는 밤이 되었는데도 불 켜지 않은 곳이 많았다 초저녁부터 무슨 짓을 하느라 불도 켜지 않는 거야 따지러 가려 했지만 안내원이 가로막았다 말로는 안전문제라지만 무균사회 인민들이 감염될까 접촉을 꺼리는 눈치였다
내려다보는 평양억에서 기차는 궤도를 벗어나 달리고 싶어했다 어쩐 일일까 남쪽 나라에서 오래전에 낙인찍은 사내들이 이곳 낯선 나라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고 했다 영번 약산 진달래꽃밭에 숨겨놓았다는 미사일 소문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로비에 앉아 나는 거푸 술만 마셔댔다
낮에 본 물고기 상점이 떠올라 어디 매운탕 잘 끓이는데 없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은 대꾸도 안했다 잠이나 잘까 하고 객길로 올라와 열쇠를 찔러도 들어가지 않고 안에서 누구야 소리만 들렸다 간신히 방을 찾아 몸을 눕혔다 속이 미어지는데 눈물도 안 났다 우주선을 기다리며 하루가 무성영화처럼 지나갔다 필름이 자주 끊겼다
* 돌아다보면 문득, 창비(2008)
.......
남북대화, 남북정상회의, 남과 북의 여전한 이념적 경계, 휴전선, 6.25.
남북통일.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
정말 북한은 우리에게 낯선 나라일까?
남한 또한 북한에게 낯선 나라이여만 할까?
그 낯선 나라(북한)에서 하룻밤만이 가능할까?
무성영화처럼 지나갔다 필름이 자주 끊겼다는 건 암흑의 천으로 막아졌다는 표현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부르짖지만, 여전히 우리의 소원은 멀리 멀고 먼 곳에 있다는 사실 앞에 쓸쓸해지네요.
이익 앞에 사탕발림을 일삼는 同族.
같은 꿈을 꾸지만 역시나 다른 꿈.
시를 읽으며 더욱 스산해지는군요.
(낯선 나라의 낯선 꿈에서,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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