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말을 어떻게 할까, 안녕하세요 초록물!
그러면 단번에 우리 풀밭을 기억해낼까 나란히 누웠던 자리에 클로버, 짓이겨진 슬픈 풀내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붉고 둥근 돌, 그 불룩한 한가운데를 지나가던 병정개미떼들과 귀기울이며 들려오던 땅속 나라의 이상한 속삭임과 머리 위에서 줄무늬구름나비들로 흩어지던 청색 하늘을 모두 내 목소리 하나로 기억해줄까
나는 날마다 '안녕'이라고 적어둔 그의 버튼을 누른다
그의 책상에서 그의 침대에서 그의 자명종 그의 바바리 그의 타월 그의 치약 아아 그의 실핏줄 나는 쉴새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의 모든 그에게 그때 함께 키운 우리 둥근 나이테, 지금도 당신 몸속에 그대로 소용돌이로 있는지
나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그만 수화기를 놓는다 그리고 다시 맨 처음으로, 어떻게 말을 시작할까 내 몸속에서 끓어오르던 그때 그 봄 여름 가을의 바람회오리 조금씩 그 둥글음이 깊어져 초록 못으로 박힌 여기 이 짙은 당신 눈동자를,
* 먼지는 무슨 힘으로 뭉쳐지나, 창작과비평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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