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닭이 그늘에 누워 운다 볏을 뜯긴 채 꼬리 잘린 개처럼, 흐느낀다 철 이른 샐비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독기 팔딱이던 볏은 닭의 숨결을 조금 더 부여잡고 있을 뿐, 동공이 풀리고 오므렸던 발가락이 허공에서 애처롭게 파닥거린다
물오른 나뭇잎 그늘, 부리에 어른거리는 태양의 열렬한 구애! 눈은 마지막 광채를 번뜩이고 젖은 이파리처럼 파르르 떨려온다 한번도 날아본 적 없던 날개가 이글거리고 창자가 타들어 간다
상처는 깊고 어둡다 뜨거운 피가 흙을 적시고 마구 돋아난 잡풀의 전생까지 적신다 사내는 칼을 갈다 말고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강도 높은 태양이 북상 중이라고...... 목이 잘리고 바람이 분다 피가 튄다...... 날아오를 듯 푸드득 마당을 가로지른다...... 닭이 운다 닭털이 뽑힌다 사나운 여름 한낮!
* 질 나쁜 연애,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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