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도마 위의 사랑 [문혜진]

초록여신 2008. 7. 13. 06:06

 

 

 

 

 

 

 

 

 

 그가 부르면 달려가서 도마 위에 눕는 나는 생체 요리, 그는 나의 요리사 내 눈물에 레몬 가루를 뿌려 서벗을 만드는가 하면 달달 볶다가 내 뛰는 심장을 바짝 태우기고 하고, 팔팔 끓여 국물을 우려내는가 하면 한동안 독에 처박아 놓고는 묵은 김치처럼 꼼짝 말고 있으란다. 그래? 그래주지 나는 독 안에 웅크리고 앉아 네 마음의 경로를 좇아본다 너의 히스테리에 휘말린 내가 가여우나 너를 훔쳐보고 끝없이 닥달하는 게 내 유희가 아니던가! 네 장난이 가소로우나 네가 친 그물 속에서 가끔은 집을 짓고 살고 싶은 내 마음을 진짜 혹은 가짜라 할 수 있을까 너의 요리는 늘 재미나다 내 몸을 한 켜씩 회 떠 조악한 장식을 곁들인 생체 요리, 너는 오랜 칼집을 마치고 일어나 걸어보라 한다. 얼마나 지켜웠던지 나는 겨울 뼈를 맞추고 도마에 누워, 칼질하는 횟수를 세다가 잠들었는지 몰라

 

 

 

 

* 질 나쁜 연애,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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