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서
분노와 원망의 해독제는 용서다.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왜 그들을 용서해야 하는가? 비록 우리가 타인에게 화를 내어 종종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라도, 정작 그렇게 화를 낼 때 가장 괴로움에 빠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화를 내고 있는 것은, 내 손에 누군가에게 던질 이글거리는 석탄 한덩어리를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목표의 명중 여부에 관계없이 결국 타 버리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화는 쉽게 처치해 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누군들 화를 내고 싶겠는가) 그 감정은 살아남아 마음을 타들어 가게 한다.
용서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기억에 머물러 감정적인 고통을 겪는다. 용서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저질렀던 부적절하고도 해로운 행위를 눈감아 준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당한 우리의 권리나 미래에 대해 더 나은 대우를 받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당신은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잘못한 사람(또는 자기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나는 누구인가?""무슨 권리로 나는 용서를 한단 말인가?" 용서하는 권리란, 단지 화를 내는 권리의 다른 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반문할 것이다.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이 무슨 권리냐?"
그러나 용서하느냐 아니면 화를 내느냐,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스스로를 용서할 때, 죄책감과 후회의 감정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죄책감이란, 내가 했던 일이 적절하지 못했음을 안 연후에, 스스로를 계속해서 판단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시간이 지나도 자신에게 계속 화가 나 있다. 후회란, 우리가 지혜롭지 못한 행위를 저질렀을 때 느껴지는 씁쓸함과 관련이 있다.
후회할 때 인생의 발전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후회함으로써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인정하고 고치기 때문이다. 후회하면서 잘못에 다가가는 것은, 죄책감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며 그것은 우리 자신을 훨씬 쉽게 용서하게 만든다.
용서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핵심적인 것이 있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은 신체, 언어, 행위, 정신적 과정 혹은 이러한 요소들의 결합체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신체는 계속 변해 가는 것이고, 말은 내뱉는 순간 사라져 가며, 행위는 저지른 그 순간 끝나는 것이고, 정신적 과정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 당신이 화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과거의 그들이 아니다. 당신은 그들이 과거에 했던 말, 행위, 생각하는 방식, 과거에 그들이 보여준 방식에 대한 기억들로 인해 현재 화가 나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도 여전히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와 꼭 같지는 않다. 그래로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분노와 원망을 계속 갖고 있음으로써 생기는 또다른 대가는 사랑의 질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은 다음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감각적인 사랑, 정서적인 사랑,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
감각적인 사랑이란 감각 대상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는 꽃과 음악, 사탕을 "사랑"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랑의 유형이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정서적인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결속이나 깊은 애착이다. 이러한 사랑의 유형 역시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사랑과 정서적인 사랑은,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해 경험하는 기분 좋은 느낌에 근거한다. 따라서 이러한 좋은 느낌을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대상이나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러한 사람이나 대상을 싫어하지는 않더라도(그 느낌이 특별히 불쾌한 것이 아니라면), 예전처럼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이와 달리, 기분 좋은 느낌에 근거해서 일어나는 사랑의 표현이 아니다. 대신 그것은 무한한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타인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무조건적인 사랑의 현존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랑을 표현하는 이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주는 이가 된다. 이는 마치 향기를 맡는 사람의 가치에 상관없이 향기를 뿜어내는 꽃과 비슷하다.
분노와 증오를 지속하는 최후의 대가는 진실한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아마 많은 이들이 우리가 이미 그러한 상태에 있음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분노를 버리고 타인을 용서하기 위해서 마음 속 여러 조건들에 매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우리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분노와 증오를 지속하는 그 대가는 누구에게나 너무 크다.
* 좋은 글이라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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