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박설희]

초록여신 2008. 7. 7. 14:49

 

 

 

 

 

 

 

 

 

 

 그가 구름 한 채를 그물에 떠메고 들어왔다 구름은 물고기처럼 싱싱했다 갖가지 색깔을 품은 채 푸득거렸다 비늘 같은 게 반짝였다 우리는 심심했다 둘러앉아 구름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간이 안 밴 구름을 먹은 우리는 늘 배고팠다 자꾸 시선이 공중으로만 향했다 잘 익은 해가 걸려 있었다

 

 

 우리 모두 구름이 되자, 구름은 늘 배부른 표정을 하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그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일정한 모양도 색깔도 없이 다들 흘러다녔다 가끔씩 만신창이가 되도록 지상으로 투신했을 뿐, 조금의 얼룩을 남겼을 뿐, 다시 돌아와 무심한 표정으로 발밑을 내려다보곤 했다

 

 

 대문 한 켠에 쪽문이 달려 있었다

 그 구름은 쪽문으로만 드나들었다

 쪽문으로만 드나들었으므로

 쪽문보다 더 작았다

 문은 늘 젖어 있었다

 문 양쪽에 노란 민들레 피어 있었다

 

 

 끝없이

 리필, 리필 되는 구름

 무너져 내리면서 폭발하듯 부풀어 오르면서

 걸레처럼

 깃발처럼

 

 

 

 

 

*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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