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저녁의 첼로 [최계선]

초록여신 2008. 6. 24. 21:28

 

 

 

 

 

 

 

 

 

 

기억이 어떤 기억된 헛간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문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잃어버리고

그 어둔 공간 속에서

기억의 문짝을 애처롭게 두드릴 때, 그때

기억된 문의 녹슨 못을 뽑아줄 큼직한 장도리는

기억들 밖에 있는가

기억과 함께 그 헛간 속에 있는가.

 

 

눈썹만한 기억들이 시들시들 떨어져 나갈 때의

묘한 느낌들, 이러다가 나는 솜털 하나 남지 않은

기억들의 문둥이가 될지도 몰라.

 

 

먼지가 없으면 석양의 노을빛도 없겠지.

 

 

파먹힌 낙엽이라도 한 장 가슴에 달아볼까?

 

 

 

 

 

* 저녁의 첼로 / 민음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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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선

1962년 춘천 출생

강원대학교 자원공학과 졸업

1986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로 등단

1990년 첫 시집 『검은 지층』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