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못하는 시간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떠도는 기러기의 역사를 아는가
어디든 줄지어 가는 저 개미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를 뜬 눈으로 지켜보는
저 금붕어의 역사는
무릎의 무수한 흉터가 나의 역사이듯
균열 간 세간들이 집의 역사이듯
군데군데 우그러든 사고(事故)의 흔적이
내 차의 역사이듯 역사는
아프게 견뎌온 상처의 기록이 아니던가
하지만 때로는
역사의 바깥에 서고 싶은 시간도 있다
역사는 없고 지리(地理)만 있는 유목민처럼*
그렇게 살고 싶은 아픔도 있다
* "유목민에게 역사란 없다. 다만 지리만 있을 뿐이다." 라고 한 토인비의 말 중에서.
2003년 5월 4일, 마산에서 직접 사인을 받았지요. 그리고 곧 유목민을 꿈꾸던 시인은 다시 유목민으로 되돌아가셨답니다.
어찌보면 우리들이 우리에 갇히길 바라셨기에 유목의 바다로 다시 항해를 계속하기로 하신 건 아닌지,
언젠간 다시 볼 수 있으리란 믿음을 버릴 수 없습니다.
시인의 사인은 내 역사이자 시인의 역사이지요.
떠돌다 떠돌다 지치면 잠깐이라도 정지를 넘어 정착, 안착하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게 유목민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목민과의 추억 속에서,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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