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 반 커피는 부적절하다 설탕으로도 크림의 나른한 안락으로도 커피는 반 스푼, 빈약하다 이십년 정량은 두 스푼, 올바른 배율과 따끈하게 데운 처녀처럼 청결한 잔을 되질하는 동안의 훈김이 내 몸을 지배해왔다 그로 인해서만 반짝, 눈 뜨는 알전구가 내 정수리를 지켜왔다. 큰일났다 커피가 떨어졌다 반 스푼, 싱겁다. 새까맣게 홉뜬 두 눈동자의 블랙을 내게 돌려다오. 나는 너에게 전화한다 나와 커피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이십 년 동안 이혼한 부부처럼 가끔 만났던 사이에 대해, 증오와 연민이 서로 등 돌린 어처구니없는 습관에 대해, 불안에 대해, 너는 콧구멍이라도 후비는지 짧게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커피를 사러 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그새 커피는 선인장처럼 시들어 갈 것이기에 죽지 마 커피, 기다려 커피, 강박적인 함량미달. 그럼 녹차를 마시던지, 몸에 좋게. 너는 콧구멍의 소통을 시험해보는지 흥흥 콧바람을 내며, 커피는 반 스푼이, 우울하다. 중독의 겹에 또 겹을 껴입고, 양파처럼 뚱뚱해진다 뚱해진다 꼭 그렇게 말해야 해? 그럼 그냥 자던지! 한 스푼 반 커피는 날 미치게 해, 수화기 구멍을 쳐들고 커피를 콸콸 들이 부어 네 콧구멍은 막힌 배수구처럼 흑해로 범람한다. 무서워 커피, 혼자만 죽자고 까던 양파도, 혼자만 좋자고 흥얼거리는 콧구멍도 그러는 거 아니지, 두고두고 다지던 다짐도 싱크대 하수구로 빠져나가고 한 스푼 반 커피는 날 돌게 해, 새까맣게 홉뜬 눈동자가 뒤집어지는 밤. 밍밍한 한 스푼 반, 처녀의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두 번, 중독은 길고 우리는 쉽게 떨어지지 못하고, 이십 년 동안의 커피를 다오 반 스푼 빨라지는 커피의 심장을! 커피의 마지막 눈동자를 날아갈 화룡검정의 눈을!
ㅡ 신작 시
* 2008 젊은 시 / 문학나무, 2008.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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