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차창룡]

초록여신 2008. 4. 24. 20:09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내가 있는 이곳은 내가 있는 이곳이고

네가 있는 그곳은 네가 있는 그곳인데

모른다니 그곳이 그곳이고 이곳이 이곳인데

제자리에서 헤매던 중 맴돌던 중

하느님의 전령이 나타나더군

차량자동항법장치라는 것을 든 흑기사였어

공짜로 달아드립니다 신을 종으로 부리게 되지요

네가 있는 곳이 곧 네가 있는 곳임을

명명백백히 알려드리는 신입니다 종입니다

휴대폰 사용료만 저희 회사로 내십시오

공짭니다 공짭니다 신도 공짜 종도 공짜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말도 안돼요

악마나 나타나 귓속말로 지저귀는 것이었어

공짜가 어딨어 공짜가 어딨어 공짜가 어딨어

둘 중 하나는 가짜였지만 나는 내가 있는 곳도 몰라

공짜가 가짜인지 진짜로 공짜인지 알 리가 없지

악마의 말은 내 머리를 쥐어뜯었어

진실은 원래 듣기 싫은 거야

악마가 더욱 집요하게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동안

하느님의 전령은 신전을 완성했어

이년 전화비를 한꺼번에 몽땅 지불한 뒤

와 나는 드디어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어 무서울 게 없어 와와와

달이 갈수록 카드빚은 늘었어 늘었어 늘었지만

그것은 내가 있는 곳을 알게 된 대가겠지

신은 나의 종이 되었어 내가 있는 곳

그곳이 어디든 따라오는 나의 신은 나를

어디론가 끌고 끝없는 길을 나의 종은

가고 있어 가고 있어 내가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려고 끝까지

 

 

 

 

 

* 고시원은 괜찮아요 / 창비, 2008. 4. 21.

 

 

 

......

차량자동항법장치(네비게이션)는 흑기사가 되어 나를 버린 너를 찾아내고

네가 버린 나를 찾아내고

나는 네가 가는 모든 길을

너는 내가 가는 모든 길을 알겠지요.

가고 있어 가고 있어 네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어 오고 있어 내가 있는 곳으로

아, 결국 어긋나는 만남이여.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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