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인간의 시
ㅡ 정오의 산책
투명하게 녹은 살갗이 허공에 분비된다
이제, 내 살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확산하는 저 깊고 붉은 同心에까지
까맣게 익은 내 알몸이 섞여 있다
나의 보잘것없는 노동이란
인간들은 잘 보지 못하는
낮고 그늘진 벽과
전망이 흐릿한 난간 사이에 이음새를 엮는 것,
바람이 한번 뜨거운 눈길을 흘기고 지나자
그림자를 벗은 사물들, 뿌옇게 얽힌다
대기가 온통 빛의 미세한 실피줄 더미 속에 하나로 뭉친다
육질의 혈관들로 번득이는 가교,
내 하잘것없는 충동과 본능으로
분비된 허공의 몸길을 따라 어느덧 붉은 중심이
대지에 밋밋한 그림자로 갈라진다
덤불을 이룬 빛의 단층 사이,
각질의 피부가 반복운동하며
명멸하는 한 世紀를 흩뿌려놓으면
더이상 시선 바깥에 머물지 않는
무정란의 세계가
몸 깊은 곳 은밀한 돌기를 열고
태양까지 뻗어오른다
*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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