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말해 볼까, 말해도 될까? [최정례]

초록여신 2008. 1. 19. 11:19

 

 

 

 

 

 

 

 

 

 

 

 

망설이는 사이

그는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고

나는 내려가고 있었다

층계를 바꿔 타고 뛰어 올라갈까

분명 그 얼굴인데

 

 

어깨는 가라안고 몸통은 굵어졌고

무엇보다도 다른 표정의 인간이 된 그

그가 쥔 비닐봉투 속에

우루사 약상자가 흔들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

봄볕 받아 길에 누운 나무 그림자

그림자 밟고 지나가면

잠시 내 몸에 얼룩덜룩 올라섰다가

에라 모르겠다

다시 눕는 나무 그림자처럼

 

 

이런 생각은 길 위에서나 잠깐

잠깐 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가던 길이나 가는 거겠지

 

 

종이컵에 빨대 꽂아 커피나 주스를 빨면서

빈 컵 바닥을 빨대로 더듬다가

마지막 공기 빠지는 소리 들리면

컵 구겨 내던져 버리면서

 

 

 

 

 

 

* 제7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 우수추천시인 작품 중에서, 동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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