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준 말 손 택 수 조문을 가서 유족과 인사를 나눌 때면 늘 말문이 막힌다 죽음을 기다리는 병실에 병문안을 갈 때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쾌유를 빕니다 이런 유창한 관용구는 뭔가 거짓말 같은데 그럴 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내게 구박만 받던 관용구는 늙은 아비처럼 나를 안아준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좋으니 내 것이 아닌 말이라도 좀 흘러나왔으면 싶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말이 그치는 그때 어둠 속 벽을 떠듬거리듯 나는 말의 스위치를 더듬는다 그럴 때 만난 눈빛들은 잘 잊히질 않는다 그 눈빛들이 나의 말이다 _《어떤 슬픔들은 함께할 수 없다》(문학동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