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신 철 규 멈춰버린 시곗바늘처럼 나는 서 있다 기침은 하지만 열은 없습니다 열은 있지만 기침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과 동선을 의심한다 내 곁에 다가오지 마세요 내 앞에서 입을 열지 마세요 눈도 깜빡거리지 마세요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처럼 입속에서 진동하는 소리들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 나약하기 때문에 이기적인 인간 이기적인 것을 감추려고 나약함을 과시하는 인간 신이 현미경으로 볼 때 인간은 지구라는 거대한 사탕에 붙은 먼지검불 같은 것 아무리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광활한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격리 시설 같은 곳이겠지 한번 들어오면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우리는 조만간 망원경으로 눈앞에 있는 서로를 쳐다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손에는 투명비닐을 끼고 눈먼 사람처럼 서로의 얼굴을 더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