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김 수 영 취해도 쉽게 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는 오랜만이라고 서로 눈빛을 던지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비어버린 자리들을 세며 서로들 식어가는 것이 보인다 가슴 밑바닥에서 부서지는 파도 저마다 물결 속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사이의 한 섬, 그 속에 갇힌 한 사람을 생각한다 외로움보다 더 가파른 절벽은 없지 살다 보면 엉망으로 취해 아무 어깨나 기대 소리 내어 울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어디든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 발치에서 물거품으로 부서져가는 것을 본다 점점 어두워오는 바다로 가는 물결 무슨 그리움이 저 허공 뒤에 숨어 있을까 _《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창비, 1996) .. 취하고 싶은 날이 있다, 하지만, 취해지지 않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