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가을 햇살 [유형진]

초록여신 2005. 9. 22. 22:39

 

 

 

 

 

 

 

 

 

 

 

 

 

 

햇살이 닿아 번뜩이는 감나무 잎으로

손목을 긋고 싶다

 

벌겋게 익어가는 살찐 열매 옆에 달려 있는

그 잎을 따다가

상처 내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애쓰는

푸르게 날이 선 그 잎사귀를 따다가

촉촉한 흙에 담그지도 못하고

볕조차 넉넉히 받지도 못한

파리한 심장을 찌른다

뜨거운 피는 콸콸 솟구쳐

모든 죽어가던 것들에게 뿌려진다

 

나는 아무 짓도 못하고

어두운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찬밥을 물에 막아 먹는다

감나무 잎에서 떨어진 햇살이

눈을 찌른다

 

 

 

 

 

 

 

 

* 피터래빗 저격사건 / 랜덤하우스중앙, 200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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