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가을 하늘 [유종인]

초록여신 2022. 9. 12. 00:22


가을 하늘
   유 종 인









하늘이 더 깊어진 것이 아니다
눈앞을 많이 치운 탓이다



밥그릇처럼 뒤집어도
다 쏟아지지 않는 저 짙푸른 늪같이



떨어지는 곳이 모두 바닥은 아니다
열린
바닥이 끝없이 새떼들을 솟아오르게 한다




티 없다는 말, 해맑다는 말!
가을엔 어쩔 수 없다는 말, 끝 모를 바닥이라는 말!




바닥을 친다는 것, 고통을 저렇게 높이 올려놓고
바닥을 친다는 것
그래서, 살찌고 자란다는 것!




당신이 내게 올 수도 있다는 것
변명은 더 이상 깊어지지 않다는 것!



_《아껴 먹는 슬픔》(문지,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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