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베란다
송 종 규
산세베리아라는 식물은 길고 뾰족한 초록색 잎에 노란색 테를 두르고 잎을 완성한다 아마 초록은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 마음의 안팎이나 미닫이처럼
나는 화분에 물을 준다 노란색 물이, 초록색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나는 소금처럼 녹는다 노랑초록노랑초록의 아이들이, 코를 막고 샘솟는다
블라인드를 열자 태양이 빛 부스러기를
바가지 바가지 쏟아붓는다 가늘고 뾰족한 잎사귀들이
자지러진다, 101동과 102동 사이에서 납작해진 구름이
딩동 유리창을 두드린다 건너편 베란다에 웬, 기저귀 같은 것들이 펄럭인다
슬픔이, 흰 손을 흔들며 마른다
나는 화분에 물을 준다 노란색 물이, 초록색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나는 이스트처럼 녹는다,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노랑, 초록, 노랑, 초록의 아이들이 손가락마다 빛의 번호표를 매단다 나는 샘솟는 노랑초록노랑초록의 아이들에게 물을 준다
책들이 젖는다, 들뜬 목소리로 나는 읽힌다
난생처음인 듯한 마음이 찌르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물컹한 늪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나는 넘친다
*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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