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박 지 혜
너에게 개미를 말했다. 마트료시카를 말했다. 고래를 말했다. 그것은 좋았다. 그것엔 대부분 울거나 웃을 수 있었다. 너는 내 손을 잡고 끝없는 길을 끝없이 걸어갔다. 언덕이 반복되는 들판을 그리며 늘어나는 복도를 바라보며. 너는 나에게 너의 숲을 주고 싶어 했다. 조금도 두렵지 않은 완전한 숲을. 우리는 끝이 없었다. 끝을 알 수 없었다. 이제 곧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일요일을 말했다. 푸른꽃을 말했다. 일렁이는 흰빛을 따라가며 불타는 숲으로 들어가며. 너는 내 손을 잡고 끝없는 길을 끝없이 걸어갔다. 우리는 끝이 없었다. 오직 그것만 알았다. 아무리 해도 그것만 알았다. 저녁이 되면 색색의 알약을 버린다. 10월에는 체리블로섬을 바르고 너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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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지혜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시와 반시'로 등단했다.
*햇빛 / 문학과 지성사, 2014,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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