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늘어졌구나, 흥
靑牛를 비껴 타고 綠水를 홀로 건너
천태산 깊은 골에 불로초를 캐러 가듯
새순 돋는 버드나무가
흥,
초록빛 혀를 내뿜으며
푸른 비 푸른 소
허공의 강을 건네주고
청산도 절로 녹수도 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 간에 저절로
휘늘어져서
한시절 경국지색이
가는 허리 긴 치마 늘어뜨리고
전국을 휩쓰는 대하드라마의
마마, 불로초를 드시옵소서처럼
결국 기울어뜨리려고
쓸데없이
누구 또 넘어뜨리려고
흥, 봄이 와서
천태산 깊은 골에 불로초를 캐러 가듯
* 레바논 감정, 문학과 지성사(2006)
…
구운 밤 닷 되를 심어 싹이 나고 잎이 날 것을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구운 밤 닷 되를 심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무쇠로 소를 짓고 무쇠소가 쇠나무 산의 풀을 다 먹도록 기다리던 이들이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무쇠로 소를 짓고 구운 밤 닷 되를 심는다. 그 소가 쇠나무 산의 쇠풀을 다 뜯기를 기다린다. 무쇠소가 무쇠 풀을 뜯고 구운 밤에서 싹이 나기를 믿기 이전에, 구운 밤 닷 되를 심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일, 이것을 나는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철조망에 싹이 나고 잎이 날 때까지 밤나무에 주렁주렁 수박 덩이가 매달릴 때까지 시에 몸 대고 나를 캐내고 나를 파묻으며 꾸역꾸역 갈 것이다.
죽은 당신이 깨어나 내 노래에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을 것이다. 가버린 시간이 거슬러 흐르다 탑이 될 수 있으리라고도 믿지 못한다. 어느 날 시간은 나에게 대항하여 칼을 휘두를 것이다. 나는 결국 고꾸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지금 스쳐지나는 것들을 향한 내 사무침이 내 속에서 그치지 않기를, 가버린 것들을 향한 이 무모한 집착도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으로 잇대어지기를, 그 모두가 다시 일어나 새로운 시작의 힘이 되기를 기다린다.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백지 위에 닿을 내릴 수 밖에, 다른 방도가 없기를 희망한다.
ㅡ시집, 뒤 표지글 <시인의 산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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