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다움

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초록여신 2009. 5. 26. 13:37

 

 

 

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내관들이 임금 곁으로 다가갔다.
내관은 임금 양쪽에서 머뭇거리기만 할 뿐,
흔들리는 임금의 어깨에 손대지 못했다.
최명길이 말했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주소서."


- 김훈의《남한산성》중에서 -


* 임금의 어깨가 흔들렸을 때
내관들의 어깨는 더욱 흔들렸을 것입니다.
내관들의 어깨가 흔들렸을 때
남한산성 작은 풀꽃들은 더욱 흔들렸을 것입니다.
영광의 역사도, 치욕의 역사도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이미 흘러간 역사는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미 떠난 목숨도 되살릴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뜻은 늘 되살아날 것이고,
모든 '남은 자'의 몫입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

이런 비극적 삶을 이끈 모든 이유들 앞에 화가 납니다.

어쩌면 우리는 마지막 자존심마저 발가벗기어 버린지 모릅니다.

결코

벌거벗은 임금님을, 대통령을 바랬던 것은 아닐지언대

평소의 결백하고 깨끗한 이미지, 그 도덕성이

어쩌면 그런 비극적 결말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에 비추어 보건대,

그건 치욕이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역사에 비추어 누가 이런 숭고한 죽음으로 항변할 수 있었을까요?

역사 앞에 떳떳하고 싶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던...

소탈하게 고향에서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싶었던...

그 작은 바램을

5년 후에도 웃고 싶다던 보통의 꿈을

앗아갔는지

그저 애통하기만 합니다.

사람사는 세상, 사람냄새나는 인간적인 태통령으로 남고 싶었던...

서민 대통령을

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그동안 힘을 주지 못했노라

부정했노라

지켜주지 못했노라

눈물을 뚝,뚝,뚝 흘립니다.

어깨가 수십 번 흔들렸을 텐데...

왜 애써 외면했던 것인가?

그저 미안함이 앞섭니다.

부디 좋은 세상에서 승천하시어

보통의 삶, 고통없는 삶을 사시기를 빌겠습니다.

(오늘도 그리움에,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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