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사방이 자욱해지면 [이문재]

초록여신 2009. 5. 3. 04:45

 

 

 

 

 

 

 

 

 

 

사방이 자욱해지면 내가

중심이 된다, 안개 속에서는

누구나 맨 앞이고 맨 뒤이다

어깻죽지 축축해지는 봄비 멎자

그 틈새로 안개가 밀려와

시멘트로 굳는다

이 들끓는 봄날은 수시로 나를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안 보이면 없는 것이라고 믿어 버리던

습관, 무섭다, 사방이 자욱해지면

한가운데서 이렇게 움직이지만

사방이 깜깜해지면 누구나 움직이는

한가운데, 아니 한가운데인

변방인 것, 방향제만 같은 그대

그대는 어디에서 흩어져 오는가

자욱해지는 것인가, 봄날은

꾸역꾸역 안개를 피워 댄다

봄날은 안 간다

 

 

 

 

 

 

* 산책시편, 민음사(2007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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