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시인 70인

사계절의 꿈 [최영미]

초록여신 2009. 2. 4. 21:06

 

 

 

 

 

 

 

 

 

 

어떤 꿈은 나이를 먹지 않고

봄이 오는 창가에 엉겨붙는다

땅 위에서든 바다에서든

그의 옆에서 달리고픈

나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떤 꿈은 멍청해서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지

 

 

어떤 꿈은 은밀해서

호주머니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는데

나른한 공기에 들떠 뛰쳐나온다

살 - 아 - 있 - 다 고,

 

 

어떤 꿈은 달콤해서

여름날의 아이스크림처럼

입에 대자마자 사르르 녹았지

 

 

어떤 꿈은 우리보다 빨리 늙어서,

가을바람이 불기도 전에

무엇을 포기했는지 나는 잊었다

 

 

어떤 꿈은 나약해서

담배연기처럼 타올랐다 금방 꺼졌지

겨울나무에 제 이름을 새기지도 못하고

 

 

이루지 못할 소원은 붙잡지도 않아

잠들기도 두렵고

깨어나기도 두렵지만,

계절이 바뀌면 아직도 가슴이 시려

 

 

봄날의 꿈을 가을에 고치지 못할지라도...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 수, 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 시, 사랑에 빠지다

 

 

   2008.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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