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등뼈로만 살기 [허연]

초록여신 2008. 11. 26. 21:35

 

등뼈로만 살기

ㅡ 지원의 얼굴*

 

 

 

 

 

 

 

 

 

 

 그녀의 날갯죽지엔 존재의 흔적이 있다.

 

 

 날개 없는 것들이 모여 비를 맞는다. 침묵도 두렵고 소멸도 두렵다. 구더기가 파먹은 어머니가 너를 만들었다. 물올랐던 어느 시절 널 만들었고, 소멸해 가던 그 언제쯤 너를 버렸다. 칼끝에선 눈물이 흘렀다. 넌 그렇게 날개를 접었다.

 

 

 날개 없이 살기. 날개의 기억으로 살기.

 우울증의 나날을 견디기 위해 비를 맞는다. 수행하기 싫은 수행자들처럼 비를 맞는다. 도를 닦지도 구태여 반항하지도 않는 속된 아름다움. 안식일을 지키지 못한 고된 아름다움.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고

 날개가 흙이 됐고, 그림자도 흙이 됐다.

 

 

 소멸을 향해 가는 침울한 술렁임

 등뼈만으로 살아야 하는 날들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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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진규의 테라코타 작품.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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