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먼 지방 우체국 사서함번호가 적힌 편지가 배달되었네
면회를 와달라는 어느 감옥에서 보낸 편지
봉투엔 받는 이의 이름만 다를 뿐 버젓이 내 집주소가 적혀 있었네
오래 책상 위에 올려둔 알지 못하는 이의 편지
화분이 편지봉투 위로 마른 꽃잎들을 한움큼 쏟아놓은 어느날
새 봉투에 또박또박 그의 주소를 적고 편지를 밀어넣고 풀칠을 하였네
이 편지를 되받는 이는 누구인가
사랑이 참 많은 사람이어서
들판이나 강가에서도 물살처럼
또 어느 먼 곳에서도 터벅터벅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일런지
며칠 뒤 편지는 나에게로 되돌아왔네
그가 출감한 것으로 치자며
마음에서 꺼낸 못으로 집 한채라도 지어올리기를 바라자며 내 감옥의 자물쇠들을 흔들어보네
과도한 세상이 다시 그를 결박하지 않기를
그가 더이상 모두를 미워하지 않기를
* 바람의 사생활, 창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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