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점 [김선우]

초록여신 2008. 9. 27. 10:45

 

 

 

 

 

 

 

 

 

 

 

나는 지금 애인의 왼쪽 엉덩이에 나 있는

푸른 점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 내가 당신이었을 때

이 푸른 반점은 내 왼쪽 가슴 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구과학 시간 칠판에 점 하나 꽝, 찍은 선생님이

이것이 우리 은하계다! 하시던 날

솟증이 솟아, 종일토록 꽃밭을 헤맨 기억이 납니다

한 세계를 품고 이곳까지 건너온 고단한 당신,

당신의 푸른 점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갑니다

푸른 점 속에 까마득한 시간을 날아

다시 하나의 푸른 별을 찾아낸

내 심장이 만년설 위에 얹힙니다

들어오세요 당신, 광대하고도 겨자씨 같은,

당신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 나, 시시로 사나워지는 것은

불 붙은 뼈가 물소리를 내며

자꾸만 몸 밖으로 흘러나오려 하는 것은

푸른 별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당신과 내가 풀씨 하나로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작과비평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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