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휘젓고 다니는 그 여자는
무심결에 켜놓은 TV처럼 홀로 시끄럽다
시원하게 터진 눈과 이마가 돋보여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그 여자는
전국노래자랑에도 출연하고 대통령도 만나고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휠체어를 잘도 굴리는 그 여자는
두 다리로 걷는 사람들보다 빠르다
스무 살에 하반신 불구가 되었어도
갉아 덧난 상처는 없다
한 손은 브레이크 또 한 손은 액셀러레이터로
유치원 통학버스를 운전했던 그 여자는
파릇파릇하다
아이를 낳지 못해도
반몸뚱이로 붉은 꽃물 쏟아내며
맑은 빛을 생산하는 여자의 웃음은
아픈 곳이 싹 나은 것처럼 가슴 뻥 뚫리는 처방전
늘상 일을 찾아 움직이는
그 여자는 내 이름과 똑같다
같은 이름이라는 것 하나로 우연히 다가와
꾹꾹 눌러둔 내 음습한 욕망덩어리를
발가벗기는 그 여자
앞에서 웅크린 고슴도치가 되어 온 가시들을 세우고
막무가내 경계를 해보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 반성하다 그만둔 날, 실천문학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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