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유목의 당신에게 [김철식]

초록여신 2008. 9. 7. 14:47

유목의 당신에게

ㅡ 담쟁이덩굴

 

 

 

 

 

 

 

 

 

 

 

 다른 세계를 꿈꾼 죄 너무 커, 이름조차 기억지 못하는 당신, 내 속으로 날아든 당신의 모습을 닮는 게 어찌 고통이 되어야 하오 다른 사랑을 위해 내민 손이 너무 많은 죄, 내 몸에선 더이상 핏줄이 자라지 않고 당신을 중심으로 말려 올랐다가 휘둘려 내려온 아뜩한 날들이 스스로 그리움을 유폐시켜 드높은 담벽을 파고들고 당신, 내 잎이 왜 심장 모양인지 살핀 적 있으시오 열매는 왜 검어야 하는지, 種子로만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삶의 시작은 스칠 듯 지척의 당신에게 바람으로만 흔들리다가 이 허공이 너무 길어 살점이 썩어야만 건너갈 수 있고 遊牧의 당신, 여기 와 죽어도 좋았을 당신은 내 전부로도 가둘 수 없는 세상 밖에서 형체를 지우고 있으니 썩어도 아래로만 향하는 내 심장의 무수한 혈맥들. 움직임을 멈추고 돌벽 가장 깊숙이 당신의 반대편으로, 절규의 눈빛을 되뽑을 수 없을 만큼 깊이 박아두어야 하는 죄어이 너무 커, 반대편으로만 전해야 하는 사랑이 너무 가혹해, 끝내 반역을 외면하는 당신

 

 

 

 

 

 

* 내 기억의 청동숲, 문학동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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