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나에게 무심해졌으면 좋겠어
너는 미술관에서 새로 산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가 부패해
리콜한 상태라고 말했지
네 개의 흰 벽을 가득 메운 맹금류
날개 편 박제들
자고 일어나면 동쪽 거실 벽에서
태양의 사제처럼 돌진하는 거대한 백상아리
한 마리 기르고 싶어
눈을 뜰 때
거대한 유리 수조에 방부 처리된 상어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면
아침마다 죽음을 환기시키는 신성한 의식
핏빛 카펫 위로
푸딩 밴드의 발랄한 레퀴엠이 흐르고
내 배에 뿌려진 인간 최초의 페인팅을 감상하며
사람도 집도 날아다니는 새도 없는 곳으로
환각의 순례를 떠나야지
인생의 얄팍한 수가 보이지 않도록
부패한 것들을 리콜할 수 있다면
죽은 살 아래
아직 싱싱한 붉은 살덩어리에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기 전
죽은 자의 영혼을
봉합되기 이전의 상처를
갑자기 외계의 쓸쓸함 속으로 달아나는 밤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매혹적인 육체의 죽음인가!
* 검은 표범 여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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