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사랑은 현물(現物)이니 ……· 유종인

초록여신 2011. 12. 5. 10:16

 

 

 

 

 

 

 

 

 

더듬어봐라

숨 놓고 얻게 된 푸른 무덤

오랜 돌비석에 새겨진 당신 이름에

흰 똥을 갈기고 가는 새들이 짧은 영혼을 뒤돌아보겠는가

 

 

당신을 품은 무덤도 당신 모르고

당신 이름을 새긴 돌비석도

당신 모르는데, 사랑은

미나리아재비과(科) 독성 품은 풀빛에도 기웃거린다

아연실색, 제 몸빛조차 모르고 흔들리다,

사라진다

 

 

더듬어봐라

사랑은 현물이니

맘에 담아 이리저리 말로 꿰려는 이여,

깨어진 돌비석에 역시 깨어진 당신 이름이여

한 이름 둘로 나뉜 비석 돌에 여전히 흰 똥을 떨구고 가는 새들,

성큼 자라오른 가시엉겅퀴 그림자가

깨진 당신 돌 가슴을 겁탈하듯 한나절 끌어안다 가는 것을

 

 

 

* 사랑이라는 재촉들 / 문학과 지성사, 2011. 11. 21.

 

 

시인의 말

 

적막과 미혹을 넘어

시(詩)여,

사랑이라는 정치,

 

천지사방ㅡ

버려진 것들의 무위(無爲)로

옹립하는,

나의 일인 소국(小國)이 번져갈

사랑이라는 정치,

 

시여, 깊은 숨을 나누어 쉬자.

 

2011년 가을 정발산(鼎鉢山)에서

유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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