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마량(馬良) ........ 나종영

초록여신 2009. 6. 17. 06:08

 

 

 

 

 

 

 

 

 

 

 

 

 

 

초록이 욕망을 버리면

쪽빛이 된다

문득 어느 저잣거리에서 흘려들었던

이길 위의 말을 되뇌이며

남도 끝 마량 포구에 서 있다

마량, 아침 마량에선

향긋한 파래 내음이 난다

몇 속의 햇김과 마른 박대 몇 마리를 흥정하는

수런거림과, 바닥에 부딪쳐 튀어오르는 은빛 갈치떼들

출어를 나가는 분주한 고깃배들의 집어들 사이로

길과 길을 이어주는 시간의 뼈대들이 보인다

그것은 아직 욕망을 안고 있는 것들이

생성을 간직한 채 살아있다는 증거인 거다

마량에서 강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다는 하늘 끝까지 쪽빛이다

제 오랜 숲정이 너머 옹기를 굽고

모진 꿈을 안고 살았던 독짓는 마을이 있었다

바다를 돌아 검은 산 아래 유배지에선

한 생애 갇혀 있으므로 비로소

시대의 길을 열었던 한 사내가 살았다

비명의 순간에도 해조음이

소름처럼 몸을 감싸던 마량 바다

쪽빛 청자를 가득히 싣고

먼 바다를 향하여 끝없이 노를 저어가던

새벽 만선의 배들,

초록이 닫힌 욕망을 털어버리면

환한 쪽빛이 된다

어느 누구든 마량,

흑산으로 가는 길 위에 서면

걸어서 하늘 바다로 가는 쉬운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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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영

광주출생. 1981년 창작과비평사 13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으로 등단.

시집으로 『끝끝내 너는』,『나는 상처를 사랑했네』등이 있다.

 

 

 

 

 

* 시에 2009년 여름호, 시와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