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날짜변경선 [신철규]

초록여신 2022. 9. 13. 23:43


날짜변경선
    신 철 규








구름 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지상에 내리기 위해 비행기는 성층권으로 진입하고
불안정한 대기에 기체가 요동을 친다

동그란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맺히고
간간이 천둥번개가 친다

비행기는 검은 해협을 가로지르는 고래처럼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좌우로 뒤뚱거리면서

내가 비행기를 타기 전 당신에게 쏟아부은 악담을 다 용서해줄 수 있겠어?

할 수만 있다면  비행기 밖으로 발을 뻗어 달리고 싶었다

안전벨트를 풀 용기도 없이
승무원의 의연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상에 가까워질수록 무거워진 공기가 긴 침(針)이 되어 귓속을 찌른다
나는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침을 삼킨다

언제쯤이면 나를, 내 삶을 덜 증오하게 될까
나이가 들수록 증오는 더 거세게 타오른다
증오의 정점에서 나는 나를 밀어버릴 수 있을까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바를 넘는 순간 허공의 정점에서 잠시 멈춰 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먹구름 속에서 오늘과 내일 사이에 있었다

밤은 여전히 가시를 곧추세우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_《심장보다 높이》(창비,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