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일요일의 상상력 [김은경]

초록여신 2018. 10. 21. 10:23



일요일의 상상력

  김 은 경










밭마다 꽂힌 초고압 송전탑이 외계인의 비밀기지라면

24시 켜진 네온이 그들의 구조 사인이라면

청량리 떡전교에서 휘청휘청 겨우 나를 비껴가는

리어카가 실은 춤을 추고 있는 거라면

허공이 토해낸 은행알들이

엄마의 젖꼭지라면, 흐느낌이 올 때마다 그녀

한쪽 가슴 걷어 올려 뽀얀 즙 먹여 준다면



사방에 숨은 맨홀들이 야전 침대라면

시립공원 녹슨 그네가

잠 못 드는 한 사람을 위한 일인용 안락의자라면



오늘이 어제라면



겨울나무에 휘감긴 전구알들이 긴 밤 굽어살피는

신의 눈동자라면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달콤할까?

조금 덜 서운할까?



월요일이 오고

장례식에 가고



밤새 덮고 있던 이불을 누군가 거두어 가고



시시콜콜 병이 자라고

어제 받은 꽃이 비록 오늘

시들어도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실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