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그냥이라는 이름의 처방전 [김은주]
초록여신
2016. 6. 9. 07:16
그냥이라는 이름의 처방전
김 은 주
무지개약국에는 간판이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잃어버린 눈빛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뿐
염색약을 마시고 검은 물결을 머리통에 매단 소녀들아
너희가 밍밍한 어제에 대해 가늠할 때 나는
우리라고 명명된 오늘을 간음하고 있었지
구름사다리처럼 마른 곡선으로 눈 뜬 소년
비어버린 평면에 대해
막자를 굴리며 바람을 채집하던 소년
넘칠 듯 말 듯 한 발등에 대해
습관적으로 땅을 차며 걷는 소년
입 안 가득 들어 있는 관계의 분말에 대해
시간을 자르는 도마 위를 겅중겅중 달리는 소녀들아
나와 함께 춤추지 않을래?
활달하게 조제된 공기
푸짐한 리듬의 안과 밖
이곳은 가볍고 탄성 좋은 잃어버린 날씨들의 도시
정신과 신체에 대해 반응하기 딱 좋은 세계
소년의 풀어진 눈알들
둥둥 떠다니는 소녀들
눈빛, 눈빛 단단하게 뭉쳐 우리의
무지개약국 간판 귀퉁이에다 슬쩍 매달고
그냥,
*희치희치 (문예중앙,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