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꽃의 슬픔 [박희수]
초록여신
2016. 5. 20. 09:29
꽃의 슬픔
박 희 수
기쁨이 없다면 이 꽃들이 다 시들 텐데
그때는 또 무엇으로 뜰을 가꾸시겠어요?
불쌍한 글라디올러스, 제라늄과 안개꽃.
슬픔이 없다면 꽃들이 향기를 잃을 텐데
그때는 또 무엇으로 코를 즐겁게 하겠어요?
불쌍한 글라디올러스, 제라늄과 안개꽃.
아픈 아침
천천히 물처럼 스며드는
이 햇빛을 몸에 바르며
기쁨이 없다면 꽃들이 시들 텐데
그러면 누가 죽은 꽃들을 위해 흐느끼겠어요?
누가 머리에 화분을 얹고 찾아와
낮게 얼굴 숙이며 어두운 꽃잎들을 토하겠어요?
그리고 코가 듣는 노래는 어디로 가나요?
누가받아줄 코도 없이 슬퍼할까요?
불쌍한 글라디올러스, 제라늄.
분수처럼 핀 안개꽃.
-박희수 시집, <물고기들의 기적>(창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