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는 불안한 샐러드다 [강기원]
초록여신
2016. 1. 31. 22:23
나는 불안한 샐러드다
강 기 원
투명한 볼 속에 희고 검고 파랗고 노란, 붉디붉은 것들이 봄날의 꽃밭처럼 담겨 있다. 겉도는, 섞이지 않는, 차디찬 것들. 뿌리 뽑힌, 잘게 썰어진, 뜯겨진 후에도 기죽지 않는 서슬 퍼런 날것들. 정체불명의 소스 아래 뒤범벅되어도 각각 제맛인, 제멋인, 화해를 모르는 화사한 것들. 불온했던, 불안했던, 그러나 산뜻했던 내 청춘 같은 샐러드. 샐러드라는 이름의 매혹적인 불화 한 그릇 입 속으로, 밑 빠진 검은 위장의 그릇 속으로, 생생히 밀려들어 온다. 나, 언제나 소화불량이다. 그 체중의 힘으로, 산다, 나는. 여전히, 내내, 붉으락푸르락 샐러드. 나는 불안한 샐러드다.
*지중해의 피 / 민음사, 2015.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