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무청 [고진하]
초록여신
2016. 1. 2. 08:56
무청
고 진 하
된장국을 끓이겠다고
겨우내 바람벽에 매달려 흔들리던
마른 시래기를 떼어다 달라고 아내가 말했다.
시래기가 된 무청은 영양가가 풍부하다고.
그렇다면
평생 숱한 시련의 바람을 맞으며
시래기보다 더 시달린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왜 영양가가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왜 지혜가 풍부해지고
슬기가 자라지 못했을까
왜 저 인간은
저승사자도 안 데려가는 거야.
저런 소리나 자꾸 들어야 할까
시래기 된장국 끓는 냄새가
집 밖까지 솔솔 새어나오는 아침
여직 장독대에 쌓인 눈과
이마에 얹히는 햇귀와
함께 식탁에 앉을 생각에 행복해하면서도
어떻게 무청처럼 영양가 높은
청청한 사람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골똘해진다
*명랑의 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