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유리창의 사내[고 영]
초록여신
2015. 9. 8. 23:57
유리창의 사내
고 영
저 유리창은 좋겠다,
언제든 흘러가는 온갖 사물들을 담아둘 수 있어서.
나는 왜 또 여관방을 기웃거리고 있는 거지?
구름의 꽁무니나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 먼 훗날
나는 구름의 사생아로 전락할지도 몰라.
저 바람의 기억에서조차 점점 소멸해가는 내가 너무 가여울 것 같아서
저 유리창에라도 나를 좀 담아두었으면 좋겠어.
담긴다는 건 일단 안정적이어서
벼랑을 품고 사는 내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게 잡아둘 수 있지 않을까
저 유연한 유리창처럼
자신을 통과하는 새들을 물고기로 바꿔 놀 줄 아는 처세술을 배울 수도 있잖아.
뼈대 하나 없이
풍경의 제국을 건설하는,
저 유리창의 처세숭을 배우면 나도 가볍게, 유연하게
내 의지만으로 다시금 상승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유리창에 무덤을 파기로 했어.
담긴다는 건 일단 안정적이어서
뼈만 남은 몰골에서도 꽃은 필 것이고
꽁지 붉은 새가 들려주는 미사의 노래가 머리를 적실 것이니,
현명한 아내여,
유리창 앞에서만큼은 절대 눈물에 속지 않기를…….
*딸꾹질의 사이학